1846년 8월 10일 미국 스미스소니언 협회 창립1846년 8월 10일 미국 스미스소니언 협회 창립

Posted at 2011/08/24 14:46 | Posted in 활자가 된 기사들/2011 어제의 오늘



스미스소니언 캐슬


미국의 수도 워싱턴 DC의 한복판에 가면 미국 의회의사당과 워싱턴 기념탑이 마주보는, 동서로 길쭉하게 늘어선 ‘더 몰’이라는 지구가 있다. 직사각형 모양의 더 몰은 공원이자 광장으로 기능하는데, 더 몰의 좌우에는 미국의 주요 국립박물관이 들어서 있다. 국립 자연사 박물관, 국립 미국사 박물관, 국립 항공우주 박물관, 국립 미술관, 국립 초상화 갤러리, 국립 미국 인디언 박물관, 프리어 갤러리 등 모두 내로라하는 박물관이다. 이들 박물관은 모두 스미스소니언 협회에 소속돼 있다.

스미스소니언 협회는 세계에서 가장 큰 박물관 단지 및 연구 복합체로 산하에 박물관 19개를 비롯해 국립 동물원과 연구소 9개가 포함돼 있다. 이 거대한 박물관 복합체는 매년 수억달러의 정부 예산이 배정되는 엄연한 미국 연방정부 기관으로, 소속 박물관과 연구소는 워싱턴 DC 외에 뉴욕시, 버지니아주, 파나마 등에 흩어져 있다.

스미스소니언 협회는 영국의 화학자이자 광물학자인 제임스 스미스슨(1765~1829)이 남긴 유산을 바탕으로 설립됐다. 부유한 영국인의 사생아로 태어나 스미스슨은 옥스퍼드 대학을 졸업하고 능아연석 등의 광물을 발견하기도 했다.

평생 독신으로 산 그는 자신의 유산을 미국 정부에 유증하면서, 미 정부가 이를 인류 지식의 증진과 보급을 위한 기관을 설립하는 데 쓰도록 유언장을 남겼다. 세계를 주유했지만 미국 땅은 밟지 못했던 스미스슨이 미국에 유산을 기부한 배경은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다. 그는 스미스소니언 협회의 설립에 관한 어떤 문서도 남기지 않았다. 혹자는 그가 아버지의 혈통을 부정했기 때문이라고도 하고, 미국의 민주주의 실험 정신에 감화받아서라는 해석도 있다.

그의 유산 금화 10만파운드는 당시 미국 화폐로 50만달러가 넘었고, 미국 전체 국부의 66분의 1에 달할 정도였다. 하지만 협회가 설립되기까지 걸림돌이 많았다. 1836년 그의 유산이 미국 조폐국에 유증됐지만 미국 국채에 투자되었다가 손실을 입었다. 이를 보전해야 한다는 의견에서부터 연방정부가 유산을 받을 자격이 있느냐 없느냐를 두고 갑론을박 끝에 1846년 8월10일 드디어 미 의회에서 스미스소니언 협회 설립 법안이 통과됐다. 이후 미국 정부가 소유한 수집품들이 스미스소니언 협회에 귀속되고 박물관이 속속 문을 열었다.

스미스소니언 협회 산하 기관들이 다루는 주제는 예술과 디자인, 역사와 문화, 과학과 기술까지 인류사의 모든 부분을 망라한다. 협회 산하 소장품은 종류만 1억3600만종에 이른다. 1838년부터 1842년까지 미 해군이 꾸린 미국 탐험대가 전 세계에서 수집한 유물들에, 미 서부와 멕시코 국경 일대, 태평양철도 등 군과 민간에서 조사를 수행하며 수집된 유물들과 각종 과학기술품, 예술품, 민속품 등이 더해졌다.

자신의 유산을 인류 지식의 증진과 보급을 위해 내놓은 스미스슨. 그의 유지는 미국의 심장부에서 계승되어, 지금 이 순간에도 국적을 막론한 관람객들이 스미스소니언 박물관군을 자유롭게 이용하고 있다.




워싱턴 D.C 내셔널 몰 일대 지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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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8월 24일 마이크로소프트사 윈도 95 첫 발매1995년 8월 24일 마이크로소프트사 윈도 95 첫 발매

Posted at 2011/08/24 09:21 | Posted in 활자가 된 기사들/2011 어제의 오늘

1995년 마이크로소프트사 윈도95 첫 발매. 
 

 손가락의 가벼운 ‘터치’ 한 번으로 프로그램이 실행되는 ‘스마트폰 시대’에, 마우스 없이 명령어만으로 컴퓨터를 구동시키는 시대가 있었다고 하면 요즘 젊은 세대들은 믿을까.
 

 1980년대 중반 국내에 퍼스널컴퓨터(PC)가 소개될 때만 해도, 당시의 PC는 복잡한 명령어를 입력해야 구동이 됐다. 컴퓨터를 구동시키는 부팅디스켓을 넣어야 작동되는 도스(DOS, Disk Operating System) 운영 체제에 기반했기 때문이다. 당시 PC는 연산처리 능력에 따라 8비트급 XT컴퓨터에서 16비트급 AT컴퓨터(이른바 286컴퓨터), 이후 32비트 486컴퓨터 등으로 진화했다. 
 
 이전의 대형컴퓨터에 비하면 도스 기반의 PC는 크기가 작고 열린 운영체제를 갖추고 있었지만, 다수의 사람들이 일상생활용품처럼 쓰기에는 진입장벽이 높았다. 초창기 도스 기반의 개인용 컴퓨터에는 마우스 조차 없었다. 운영체제가 그래픽 이미지 기반이 아니라 텍스트 기반이었기 때문이었다. 까만 바탕화면에 초록색 커서가 반짝거리면 이에 따라 명령어를 입력하고 컴퓨터를 실행시켰다. 
 
 한데 1995년 8월24일 마이크로소프트사에서 ‘윈도95’를 발매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윈도 95는 텍스트 기반의 도스 체제가 아니라 그래픽 인터페이스 운영체제였다. 게다가 멀티태스킹이 가능했다. ‘윈도95’ 이전 출시된 ‘윈도 3.1’도 아이콘과 버튼을 활용하기는 했지만, 기본 운영체제는 도스였다. 그러나 윈도95는, 컴퓨터를 명령어를 알아야 실행할 수 있었던 소수의 도구에서 명령어를 몰라도 다수가 이용할 수 있는 도구로 바꿔놓았다. 
 
 바야흐로 PC 대중화의 발판이 마련된 것이다. 대학생들은 손글씨 대신 컴퓨터의 문서작성 프로그램을 활용해 리포트를 제출하고, 기업은 직원들에게 컴퓨터를 지급해, 업무의 전자문서화는 급속히 진행됐다. 그뿐 아니었다. ‘윈도95’는 보조장치들을 컴퓨터에 꽂으면 바로 기능하는 ‘플러그 앤 플레이’ 기능을 갖췄고, CD-롬의 활용을 통해 멀티미디어 기능이 대중화 되었다. 
 
 특히 ‘TCP/IP 프로토콜’을 활용해, 전화선을 이용한 네트워크 접속이 가능해진 것은 혁명이었다. 국내 PC통신의 활성화에도 기여했다. 

 더 쉽고, 빠른 윈도 95는 인텔사의 펜티엄 칩과 결합해 전세계 개인용 컴퓨터에 내장돼 팔리기 시작했다. 고가였던 애플사의 매킨토시 컴퓨터에 비해 쉽고 저렴했기 때문에 윈도 운영체제를 갖춘 IBM 호환 PC는 전세계를 곧 장악했다. 
 하지만 이같은 끼워팔기와 세계 PC 시장에서 운영체제의 독점으로 인해, 마이크로소프트 사는 2000년 미국 연방법원으로부터 셔먼 반(반) 독점법을 위반했다는 판결을 받는다. 2001년 빌 게이츠는 이에 불복하고 항소에서 승리, 합의를 통해 독점법 위반 전쟁을 끝내게 된다. 
 
 윈도95는 3년뒤 출시된 윈도 98로 대체됐지만 마이크로소프트사가 발표한 운영체제중 꽤 안정적인 체제에 꼽힌다. 이후 윈도 시리즈는 ‘윈도 2000’, ‘윈도 XP’, ‘윈도 비스타’를 거쳐 2009년 ‘윈도우7’에 이르렀다.

                                                                                               /윤민용 기자 vist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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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아나 존스와 고고학의 모든(?) 것인디아나 존스와 고고학의 모든(?) 것

Posted at 2011/08/19 18:23 | Posted in 역사와 미술 사이




제목이 좀 거창합니다... 낚시용 제목 한번 달아봤습니다. ㅎㅎ
지난번에 해리슨 포드를 쓰면서, 내친 김에 이것저것 찾아보다만 포스팅을 다시 정리해봅니다.




■1.레이더스 : 잃어버린 성궤를 찾아서(Raiders of the Lost Ark, 1981)
 

■ 2. 인디아나 존스와 미궁의 사원 (Indiana Jones and the Temple of Doom, 1984)

■ 3. 인디아나 존스와 최후의 성전 (Indiana Jones and the Last Crusade, 1989)

■ 4. 인디아나 존스와 크리스털 해골의 왕국(Indiana Jones and the Kingdom of the Crystal Skull, 2008)

인디아나 존스  공식 홈페이지 :  http://www.indianajones.com



알고보니, 올해는 인디아나 존스 탄생 30주년이었네요.  인디아나존스는 요즘 문화계에서 '좋아하는' '원소스 멀티유징'의 대표적인 사례라 할텐데요, 게임도 나오고 번외편으로 TV시리즈인 '영 인디아나 존스'도 1990년대 초반 우리나라에서 방송이 됐었죠. 

감독은 모두 스티븐 스필버그가, 각본은 조지 루카스와 필립 카우프만이 썼습니다. 
 인디아나 존스는 조지 루카스와 스티븐 스필버그, 해리슨 포드의 3인이 시쳇말로 쿵짝이 맞아 만들어졌고, 지금까지도 시리즈의 명성이 이어지고 있는데, 모험 캐릭터의 대명사가 되었죠.

어느덧 해리슨 포드는 60대 후반이 되었지만, 
젊은 시절의 인디아나 존스는 이런 모습.. 얼굴선이 참 날렵하군요. ^^

인디아나 존스의 젊은 시절을 기억하는 팬으로서 스크린에서 그의 나이듦을 확인하는 것이 조금은 서글픕니다.


인디아나 존스의 상징, 가죽 크로스백과 채찍, 페도라!

 

제 지인 중에는 저 페도라를 구하기 위해 한땀한땀 직접 페도라를 짓는 장인을 만나기 위해 어마어마한 기차삯을 내고 영국 어느 시골 마을에 가서, 페도라를 사온 진정한 인디아나 존스 팬도 있습니다.

*정정 요청: 이 포스팅을 본 지인의 정정 요청.. 페도라가 아니라 가죽 자켓이었다네요. 기차역에서 가게까지 차로 금세이나 택시비가 어마어마해서 2시간을 걸어갔는데, 장인이, "한국에서 그걸 사러 직접 온 사람은 네가 처음이다" 이러더니 어찌 왔냐 해서 걸어왔다니까, '벤츠'에 태워 기차역까지 배웅해주셨다는군요.  ㅎㅎ 



한 사람의 인생의 방향을 좌우하는 여러가지 요소가 있을텐데, 누군가는 책을 통해, 누군가는 선생님의 칭찬 한마디에 미래의 직업을 꿈꾸기도 합니다. 1980년대 어린시절을 보낸 이들 중에는 인디아나 존스를 보고, 당시만 하더라도 생소한 직업이었을 고고학자의 꿈을 키운 이들이 꽤 됐었죠. 실제로 제 주변에는 인디아나 존스를 보고 고고미술사학과에 가거나 인류학과에 가신 분들이 있어요.  

(제 경우엔, 인디아나 존스 보다 맥가이버에 빠져서, 물리학과에 가서 물리학자가 되겠다는, 지금 생각해보면 얼토당토 않은 꿈을 꾸던 시절이 있었죠. ㅎㅎ 그러나 중고등학교 물리와 수학 수업을 들으며, 제가 얼마나 가당치도 않은 꿈을 꿨던가 알게됐지요. -_-;;;

과학 전공한 후배랑 이야기하다보니, 후배 왈, "전 어릴때 맥가이버가 화학과 나온 줄 알았어요."
그러게요 생각해보니 씹던 껌으로 폭탄장치를 멈추질 않나, 맥가이버칼 하나로 폭탄을 해체하고.. 드라마에 나온 물리학의 원리라고는 맥가이버칼로 지렛대의 원리를 이용해 뭔가 하는 정도?
그런데 왜 물리학도가 첩보원으로 ? 피닉스 재단 손튼 국장에게 물어보고 싶군요. )



테마음악으로 기억되는 영화들도 꽤 되는데, 인디아나 존스가 그런 경우죠.
영화음악의 대부, John Williams 가 작곡한  Raiders March. 존 윌리암스는 2008년 개봉한 4편의 음악도 담당했죠.  



 인디아나 존스는 레고 시리즈로도 팬들과 만났죠. 레고 동영상 패러디도 있네요. ㅎㅎ 








인디아나 존스의 팬을 자처하는 이들이 전세계에 허다하죠. 이 열혈팬들은 자신들의 팬심을 각종 관련 아이템을 수집하는 것으로, 인디아나 존스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는데요. 우리나라에도 몇분 계십니다. 3년전엔가, 인디아나 존스 4편이 개봉할 무렵..에 몇권의 팬덤북이 나왔습죠.. 

인디아나존스와 고고학
국내도서>역사와 문화
저자 : 류동현
출판 : 루비박스 2008.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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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아나 존스의 탐험수첩 (양장)
국내도서>비소설/문학론
저자 : 데니스 키어넌(Denise Kiernan),조지프 다그네스(Joseph D’Agnese) / 이상구역
출판 : 보누스 2008.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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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유수한 문화유산과 유적이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를 통해 알려지기도 했죠.
대표적인 곳이 바로 요르단의 '페트라'가 아닐까요. 트랜스포머 등등 뭔가 신비롭고 현묘한 기운이 넘치는 성소로 자주 등장하는 곳이죠.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는 국내에서도 80년대 극장 개봉을 하면, 그해 영화수입 1위에 오르는 기록을 세울 정도로 전세계인들에게 사랑을 받았습니다만, 영화에 배어있는 오리엔탈리즘의 시선 또한 비판을 많이 받았죠. 
영화속에 등장하는 제3세계인들은 늘 미개하고, 원시적이며, 똑똑하지 못한 이들로 그려집니다. 냉전시대를 배경으로 설정된 이분법적 구도 역시 도식적이고요. 인류 문명의 기원을 캐는 고고학이라는 학문을 너무 흥미위주의 오락거리로 폄하했다는 비판도 받습니다. (사실 고고학이나 지리학, 지역학 등의 태생 자체가 제국주의와 분리할 수 없겠지만서도요.)    


관련 자료를 찾다보니 미국에서는 인디아
나 존스 탄생 30주년을 맞아 미국 내셔널 지오그래픽 소사이어티와  함께  인디아나 존스를 테마로 한 전시회를 열고 있습니다.

전시의 이름은  <인디아나 존스와 고고학의 모험 Indiana Jones and the adventure of Archeaology>.
http://www.indianajonestheexhibition.com/ 

인디아나 존스 영화 제작에 사용된 각종 기법과 특수효과 고고학 지식, 유물 등을 보여주는 전시랍니다. 
고고학으로 유명한 펜실베이니아 대학 내 Penn Museum이 함께 기획, 준비했네요. 

사이트를 들여다보니 궁금해집니다. 
이 전시는 현재 캐나다 몬트리올 사이언스 센터에서 전시, 8월까지 열리고 그 후 전세계를 돈답니다. 한국에도 올까요?? 

최근에는 고고학도 최신과학 기술을 동원해 첨단화 되고 있고, 고고학의 영역 또한 다양해져서 해양고고학, 전쟁고고학 등으로 세분화되고 있는데요.
이참에 고고학 관련 입문서를 몇권 소개해보자면요,  첨단 고고학의 성과는 다음 책에 재미나게 서술돼 있어요~ 


고고학자, DNA 사냥을 떠나다 - 인류의 비밀을 밝히는 최첨단 고고학
국내도서>자연과 과학
저자 : 마틴 존스 / 신지영역
출판 : 바다출판사 2007.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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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체 고고학이 뭐냐, 그 실체가 궁금하다, 이런 분들에게 (부끄럽지만),책 한권 소개하자면.. 

고고학의 모든 것
국내도서>역사와 문화
저자 : 폴 반(Paul Bahn) / 원형준역
출판 : 루비박스 2008.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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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책이 있습니다. 지금은 절판됐는데요. 

영국 케임브리지대에서  고고학을 가르치던 세계적인 고고학자 폴 반이 진두지휘를 맡은 책인데요, 책의 절반은 19-20세기의 주요 고고학자와 그들의 성과에 할애하고, 나머지는 각 대륙별로 주요 고고학 유적지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도판이 컬러인데다 너무 어렵게 들어가지 않고, 교양서로 보기에 딱 적당한 정도로 유적지의 역사, 발굴의 역사와 최신의 발굴 성과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사실 저도 저 책의 공역자로 일부 번역을 했습니다. 한데 처음 들어본 유적지도 많더군요. ^^;;
(저는 아시아, 오세아니아, 아메리카 편을 맡았는데 혹시 책을 보신 분들 중에 이상하거나 정정해야할 부분이 보인다면 기탄없이 댓글 달아주시길... )

좀 더 학문적으로 고고학에 입문하고 싶으신 분들이라면, 이 책이 볼만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현대 고고학 강의
국내도서>인문
저자 : 콜린 렌프류,폴 반 / 이희준 역
출판 : 사회평론 2008.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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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출신의 쎄람이 쓴 이 책도 고고학과 고고학자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데 좀 더 술술 읽히는 편이죠.  

몽상과 매혹의 고고학 (양장)
국내도서>인문
저자 : C. W. 쎄람 / 강미경역
출판 : 랜덤하우스 2008.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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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서없는 포스팅은 이쯤에서 줄이겠습니다. 이만 총총. 다음에 좀 더 충실한 포스팅을 하겠습니다......
라고 쓰기가 민망합니다만, 노력해보겠습니다.. (기약만 한다는 문제..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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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아나 존스와 고고학의 모든(?) 것  (4) 2011/08/19
  1. mannerist
    한창 때 아이큐 점프인가 주간 만화잡지에서 "닥터매직"이란 만화도 있었죠. 인디아나 존스를 보고 인생이 바뀌었다는 고고학자 주인공이 비스무리한 개그 모험을 펼치던 ㅎㅎ

    전 영화도 영화지만 루카스 아츠에서 만든 인디아나 존스 어드벤쳐 게임이 훨씬 기억에 남아요. 디스켓 아홉장을 번갈아서 끼웠다 뺐다 하며 즐겼던. 독일군의 성을 헤메면서 몇 번이나 죽었던지 ㅜㅜ 영어를 해독 못하던 시절 이야깁니다^^;
    • 2011/08/21 13:16 [Edit/Del]
      486 컴퓨터에 5.25인치 디스크 넣고 돌리던 시절 이야기?? ㅎㅎ

      닥터매직도 전 잘 몰겠네요.. ㅠ.ㅠ
      음.. 전 너무 만화와 거리가 먼 삶을 살아온듯.
  2. avantchina
    인디아나 존스 고딩때 단체관람하고 넘 재밌어서 별도로 2번인가 극장가서 더 봤어. 84-85년 두 해에 걸쳐 참 잼있는 영화 많이 개봉했던걸로 기억. 아마데우스, 원스어폰어타임인아메리카(왕창 잘려서 나왔음), 구니스, 터미네이터, 폴리스 아카데미, 스트리트 오브 파이어, 인디아나 존스, 그리고 나이트메여 등등. 고딩땐 정말 할리우드 키드가 안 될 수 없었다능... 89년도에 인디아나존스III 보구 거기서 나온 페트라 100% 세트인줄 알았는데 한참후 진짜 그런 곳이 있다는 거 알고 깜놀~ 일본만화 <마스터키튼>도 참 재미났다는...
    • 2011/08/21 13:14 [Edit/Del]
      언니야말로 인디아나 존스 광팬이셨구만요. ㅎㅎ
      와, 그런 명작들을 다 극장에서 보셨다니.. 부럽군요..
      저의 영화체험은, 사실상 대학시절에 거의 국한되서.. 홍콩 느와르 영화들도 제가 중딩때 막 유행이었는데, 그런데 별로 관심도 없고, 집에 비디오플레이어는 교육방송 Tv과외를 핑계로 사달라 해서, 93-4년 무렵에야 그때 나오던 영화들을 비디오로 보고 그랬는데,

      가끔 비디오나, dvd 등으로 옛날 영화 보게 되면 스케일 큰 영화들은 대형 스크린으로 보고 싶다는 생각이 이따금 들더라구요. 이를테면 '아라비아의 로렌스' 같은?

      마스터 키튼, 우라사와 나오키 작품이군요.. 호기심 당기는 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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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8월 3일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세상을 뜨다.2004년 8월 3일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세상을 뜨다.

Posted at 2011/08/03 16:00 | Posted in 활자가 된 기사들/2011 어제의 오늘



[어제의 오늘] 2004년 8월 3일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사망



“나에게 사진은 순간과 순간의 영원성을 포착하는, 늘 세심한 눈으로부터 오는 자연스러운 충동이다. 드로잉은 우리의 의식이 순간적으로 파악하는 것을 섬세한 필적으로 구현해낸다. 사진은, 성찰을 드로잉하는 순간적인 행위이다.”

카메라를 든 철학자,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그가 7년 전 오늘 9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떴다. ‘결정적 순간’을 통해 다큐멘터리 사진미학을 확립한 그는 ‘취미를 하나의 예술 형태로’ 정착시킨 포토저널리즘의 선구자였다. 



1908년 8월22일 프랑스 파리 인근의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난 브레송은 대학입학자격 시험인 바칼로레아에 연거푸 낙방한 이후 초현실주의 이론가인 앙드레 브르통 등과 교유하면서 예술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앙드레 로트에게 그림 지도를 받은 그가 카메라를 처음 만진 것은 23세 때. 아프리카의 아이보리 코스트로 건너가 1년간 체류하면서 이를 사진으로 기록했다. 유럽으로 돌아온 이듬해 독일 라이카사의 35㎜ 카메라를 구입했다. 젊은 시절 한때 영화에 눈을 돌리기도 했지만 보도사진을 찍기로 결심한 이후 그는 1947년 로버트 카파, 데이비드 세이무어와 함께 보도사진 에이전시인 매그넘 포토스를 창립했다. 마하트마 간디의 장례식, 스페인 내전, 파리 해방, 국민당의 몰락과 중화인민공화국의 탄생, 인도네시아의 독립, 영국왕 조지 6세의 대관식 등 세기의 순간들이 그의 필름에 담겼다. 

브레송의 ‘결정적 순간’은 휴대와 촬영이 간편한 35㎜ 카메라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브레송은 카메라를 평생 자신의 제2의 눈이라 여겼다. “나는 라이카를 발견했다. 그것은 내 눈의 연장(延長)이 되어 한시도 곁을 떠나지 않았다. 마치 현장범을 체포하는 것처럼 길에서 생생한 사진들을 찍기 위해 나는 바짝 긴장한 채로 하루 종일 걸어 다니곤 했다. 무엇보다도 돌발하는 장면의 정수를 단 하나의 이미지 속에 포착하고 싶었다.”

이를 위해서는 대상에 대한 오랜 관찰과 직관적인 판단이 필요하다. ‘결정적 순간’은 52년 발간한 사진집 <재빠른 이미지>에 본인이 쓴 서문. 그는 여기서 어떤 상황이나 인물의 진수라 할 만한 순간을 직관적으로 포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일부 평론가들은 그의 사진을 ‘스냅사진’이라고 폄훼하기도 했지만, ‘결정적 순간’론은 이후 반세기 동안 다큐멘터리 사진가들에게 거부할 수 없는 지침이 됐다.

피사체가 의식하지 않는 사진이 가장 자연스럽다고 생각한 그는 라이카 카메라에 표준렌즈만을 물렸고 카메라의 은도금 부분마저도 검정테이프로 가렸다. 그는 사진가는 암실이 아니라 카메라를 통해 이미지를 완벽하게 구성하고 편집해야 한다고 생각해 인화 후 보정이나 트리밍 등에 반대했고 심지어 사진에 제목도 달지 않았다.

“나에게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다른 시각적 표현 수단들과 분리될 수 없는 이해 수단이다.” 사진을 찍는 행위 자체가 외침과 해방의 방식이자 삶의 방식이라고 말했던 브레송은 그때까지 회화와 새로이 등장했던 예술장르인 영화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던 사진의 지위를 예술로 끌어올렸다.

윤민용기자 vista@khan.co.kr




사진을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절대 놓칠 수 없는 이름,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줄여서 HCB라고도 하죠)

학교 다닐 때 사진 수업을 들었었는데, '결정적 순간'은 그때 들었던 것 같습니다.
브레송이 찍은 일상의 사진들은 들여다보고 있으면 배시시 웃음이 나오죠.  

(으쓱!!) 나도 다 컸다규~!!

포인트는 키스하는 연인들 밑에 강아지의 시선.




하나 그가 찍은 예술가들의 사진집 <영혼의 초상>을 펼쳐보고 있노라면, 대상의 본질, 정신성을 한눈에 보여주는 사진을 보고 있으면 입을 다물 수가 없어요. 이런 면에서 그의 사진은 동양화론에서 '전신사조(傳神寫照)'를 떠올리게 합니다.  전신사조란 인물화를 그릴 때 대상의 외형을 묘사하는데 그치지 않고, 대상의 내면, 정신성까지 담아내야 한다는 원칙인데요..
 


                              잘 알려진 <고도를 기다리며>의 작가 사무엘 베켓의 사진입니다.

<영혼의 초상> 표지에 실리기도 했죠. 
꼬장꼬장하면서도 먼 곳을 응시하는 베켓의 저 형형한 눈빛!     





알베르 까뮈.. 조금 불량해보이며 장난기도 있어 보이죠? 


미국의 모더니스트 시인 에즈라 파운드의 노년.
가만보니 엄지손가락 부분이 좀 독특한데요.. 뭐지요?
 
 



사르트르


그리고 사르트르.. 
구도가 독특한데, 사르트르의 성격이 엿보이지 않나요? ㅎ
이 사진은 정말 피사체가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아 나온 사진일텐데
자연스러워서 좋습니다.  

 

이건 제가 예전에 좋아했던 브레송의 풍경 사진. ㅎㅎ   
아주 똑 떨어지잖아요~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재단 홈페이지는 여기.   

브레송이 1947년 세운 매그넘 포토스 홈페이지는 여기.  
브레송을 검색하면 다양한 브레송의 사진을 볼 수 있어요.  







국내 번역된 브레송의 책으로는 다음이 있습니다. 

영혼의 시선 - 앙리 카르티에-브레송의 사진 에세이
국내도서>예술/대중문화
저자 :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 권오룡역
출판 : 열화당 2006.09.20
상세보기
 이 책은 예술론이라서 아주 얇은데 정말 정수가 들어있죠. 

내면의 침묵 - 앙리 카르티에-브레송이 찍은 시대의 초상
국내도서>예술/대중문화
저자 : 아녜스 시르,장 뤽 낭시(Jean-Luc Nancy) / 김화영역
출판 : 열화당 2006.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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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소장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브레송 사후 프랑스에서 특별전을 열면서 만든 카탈로그인데 20세기의 쟁쟁한 예술가들 사진이 실려있어요.  
낭시가 쓴 서문도 참 좋아서 어딘가 메모해뒀는데 찾지를 못해 인용을 못하고 있다는.. ㅠ.ㅠ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그는 누구인가? - 카이로스의 시선으로 본 세기의 순간들
국내도서>예술/대중문화
저자 : 앙리카르티에브레송
출판 : 까치(까치글방) 2003.05.20
상세보기

이 책은 대형 판형으로 나온 사진집인데 꽤 비싸서 만지작 거리기만 했던 기억이... ^^;; 


여튼 사진을 좋아하는 분들이 아니더라도, 브레송의 사진집 기회가 되면 꼭 한번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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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 7월 27일 한국의 초고층 빌딩 시대를 열다-63빌딩 준공1985년 7월 27일 한국의 초고층 빌딩 시대를 열다-63빌딩 준공

Posted at 2011/07/27 16:42 | Posted in 활자가 된 기사들/2011 어제의 오늘




[어제의 오늘] 1985년 7월 27일  63빌딩 준공



서울시 영등포구 여의도동 60번지. 1985년 7월 27일 이곳에 동양 최고의 빌딩이 우뚝 섰다. 63빌딩이다. 지상높이 249m에 지하3층 지상 60층, 연면적 16만 6000㎡. 해발 높이는 264m로 남산보다 1m 낮고 당시 동양 최고 빌딩이던 일본 도쿄 선샤인 빌딩보다 25m높았다. 


 

63빌딩의 야경/경향신문 DB



63빌딩은 88서울올림픽과 함께 강성해진 한국 국력의 상징이었다. 19세기 중반 철강을 활용한 건축공법의 발달, 엘리베이터의 발명으로 초고층 빌딩 건축이 가능해지면서 마천루는 각국의 첨단건축공법과 국력을 보여주는 시험대가 됐다. 



63빌딩은 미국 SOM사와 국내건축가 박춘명씨가 설계를 맡았고 시공도 국내기술로 해결해 당시 “한국건축술의 개가로 인정받았다.” 건물은 80년 2월 착공해 총공사비 1800억 원을 들여 85년 5월 완공하고 7월 27일 정식개장했다. 1층부터 39층까지 건물폭을 줄여나가고  좌우로 30㎝ 가량 탄력을 갖도록 설계돼 초속 40m의 강풍과 진도 7의 지진에도 견딜 수 있게 했다. 황금색 이중 반사유리로 마감해 기온과 시각에 따라 시시각각 유리색이 변하는 등 미관에도 신경을 썼다. 63빌딩은 처음에는 14빌딩이 될 뻔했다. 14층으로 건축허가를 냈다가 이후 54층에서, 다시 60층으로 층수가 변경됐다. 

 

63빌딩은 여러가지로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웠다. 한국에서 뿐 아니라 동양에서 가장 높은 빌딩이라는 타이틀을 차지했을 뿐 아니라 1일 상주인구 1만명, 유동인구 2만명 등 ‘수직도시’의 시대를 열었다. 뿐만 아니라 초고층 빌딩 전망대와 관망용 엘리베이터, 수족관과 국내 최초의 아이맥스 영화관까지 갖추는 등 빌딩 자체가 관광자원의 역할을 하는, 명실상부한 서울의 ‘랜드마크’로 떠올랐다. 개장후 처음 며칠간은 여름방학과 휴가기간이 몰려 가족단위 나들이객으로 몸살을 앓았다. 당시 4인 가족이 빌딩내 수족관과 영화관, 관망용 엘리베이터를 타는 데 드는 비용은 2만5천원. 영화관과 수족관 입장권은 매진되고 엘리베이터를 타려는 이들이 길게 줄을 서서 시민들은 “서 있으면 짜증만 나고 앉으면 돈”이라고 불평을 해댔다. 



63빌딩의 준공으로 서울 역시 본격적인 마천루의 도시 대열에 합류했다. 이전까지 국내 최고층 빌딩은 70년 준공된 높이 114m의 삼일빌딩이었으며 70년대 초반만 해도 높이 100m가 넘는 건물은 서울 시내에 10여개였다. 한동안 국내 최고층 빌딩 1위를 자처하던 63빌딩은 2002년 10월 완공된 타워팰리스(263.7m, 지상 73층), 목동 하이페리온 타워(256m, 지상 69층)에 영예를 물려줬다. 2011년 현재 우리나라 최고층빌딩은 지상높이 305m인 인천 송도신도시의 동북아트레이드 타워이다. 


‘더 높이, 더 견고하게’.
내기라도 하듯 세계 곳곳에 초고층빌딩이 속속 들어서면서 기록은 갱신되고 있다. 현재 세계 최고층 빌딩은 아랍 에미레이트연합 두바이에 들어선 높이 828m의 부르즈 칼리파이다.

윤민용 기자 vista@kyunghyang.com



지방 소도시에서 어린시절을 보낸 제게, 서울은 동경의 대상이었습니다. 
여름방학을 마치고 개학하면, 서울에 다녀왔다는 아이들이 자랑하던 곳이 바로 63빌딩. 고층건물이라곤 아파트 몇채를 찾아보기 어렵던 시절, 63빌딩을 다녀온 아이들은 63빌딩 미니어처 저금통 등의 물건들을 학교에 들고와 자랑질을 하곤 했더랬죠. 

한데, 제겐 치명적 약점이 있으니 그것은 고소공포증.. 3층 건물에서 아래를 내려다보기만 해도 어질어질해서 높은 곳은 딱 질색이라, 63빌딩에 갔다왔다는 자랑이 제게는 먹히지 않았습니다. 
 


마천루에 올라가 보고 싶다는 열망도 그닥 없었고, 서울로 대학을 온 뒤에도 63빌딩은 가 본 적이 없네요. 남산타워도 회사 들어온 이후에야 가봤으니... 서울사람들은 외려 서울을 모른다더니, 딱 그짝이었습니다. 
 

서울이 여행의 공간이 아니라, 생활의 공간이었기 때문이었겠죠. 
실제로 미국 체류시절, 마천루의 도시 시카고와 뉴욕에 꽤 머물렀었는데, 그곳에 유명한 고층빌딩은 대략 둘러본 듯 하네요. 여행객이었으니까요.. ㅎㅎ

시카고에선 당시 세계에서 3위 건물이라는 Sears Tower 전망대를 갔었는데,  발밑이 유리로 되어있어서 어질어질하지만, 눈앞으로 뻗은 바둑판 모양의 시카고 시가지는 조금 답답하긴 해도 산 하나 없이 장쾌하게 뻗은 인공의 아름다움이랄까, 기하학적 형태미랄까 이런 것들을 느끼기에 나쁘지 않았던 듯 합니다. John Hancock Observatory는 스카이라운지 바가 멋졌던 기억이 나고요.

뉴욕은.. 단연..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을 빼놓을 수 없죠.. 90년대 중반은 <Love affair>가 리메이크되고, 로맨틱 드라마의 고전이 되어버린 <시애틀의 잠못 이루는 밤> 등이 나왔었는데, 그 영화를 즐겨봤으니 당연히 가줘야죠.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전망대는 야외에 노출되어 있어서 망원경으로 뉴욕 곳곳을 돌아볼 수 있게끔 되어있는데, 해질 무렵 가면 석양과 더불어 불빛이 점등된 맨해튼 시가지를 볼 수 있는데, 시카고의 야경처럼 장쾌한 맛은 없더군요. 곳곳에 고층빌딩이 솟아있고 바다와 교각 등이 어지럽게 얽혀 있어서요.   

뉴욕 맨해튼의 월드트레이드 센터는 꼭대기층에 전망대가 있었는지 없었는지 가물가물 합니다만, 로비에 윈터 가든이었던가요.. 이름은 멋졌으나.. 네 이름만 멋졌던 것 같습니다. 9.11 테러 뉴스를 보며 어찌나 놀랐던지.. 

동양에서 마천루의 도시라 하면, 홍콩과 도쿄를 빼놓을 수 없겠네요.. 개인적으로 도쿄 모리타워 내부 40몇층에 있던 도서실에 반했던 기억이 나네요. 나중에 사진첩 뒤져 올려봐야겠네요. 

아시아에서 가장 높은 건물은 타이페이의 101타워와, 말레이시아 페트로나스 타워가 있는데. 
이제 타워엔 별 관심이 없고, 올라가봤자, 라는 생각이 들어서.. 2004년인가, 패키지 상품으로 상하이에 동방명주탑 올라 가본 뒤로는  마천루는 가본 적이 없군요.. ㅎㅎ 

여러분의 마천루 경험은 어떠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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